W.제이치(blog.naver.com/jae_ch) -2차 수정을 금합니다! . . . (Min-ho) 나는 지독히 현실적이다. 귀신? 당연히 믿지 않았다.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 일 뿐이니깐. 천국 혹은 지옥? 사후세계 따위도 믿지 않았다. 죽으면 죽는거지 다른세계라니 말도안된다. 천사 혹은 악마? 이건 더더욱 믿을리가 없다. 하지만.... 이젠 모조리 과거형이 되버렸다. 너를 만나 버렸기 때문에.. Start. 널 보자마자, 내 모든 행동이 멈추었다. 걷고있던 발도,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던 손도 모두 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추운 겨울인데, 정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널 보고 멍해져 버렸다. 그리고 사람치곤 너무 투명해서 마치 깨질 것만 같은 눈동자와 마주하자, 무언가에 홀린 것만 같이 너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며 무수히 많은 생각과 추측을 해보았다. 분명 너의 몸에서 빛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가 마치 무슨..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도 되는듯이.. 머릿속으로 어릴때 읽어보았던 책을 떠올려 봤다. 제목은 기억나진 않지만, 천사가 나왔던 책이었다. 하느님이 천사에게 인간이 사는 이유 세가지를 찾아오라고 했었던 내용의... 네가 거기에 나오는 천사가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보았다. 그 책에서도 천사가 나신으로 등장했었으니깐.. 내가 나답지 않게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가며 너의 앞에 도달할 때 까지, 너도 내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나 또한 너의 투명하고도 서늘한 눈동자를 계속 마주하며 네 앞까지 도달했다. 그 뒤에 내가 했던 행동은.. 너의 알몸인 채 몸을 웅크리고 있던 너의 어깨를 잡은 것.. 확인해 보고 싶었다. 꿈인 줄 알았다. 혹은 환영이 보이거나.. 둘다 아니었다. 내 손안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에 나는 흠짓- 손을 다시 뗐다. 깨달았다. 넌 인간이 아니었다. 온몸이 차갑고, 겨울에 알몸인 채 길거리에 있었으며, 깨질 듯이 투명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너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었다. 난 두려웠다. 지금까지 나의 모든 가치관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이세상엔 인간이 아닌것이 존재했고, 현실이 전부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내 오랜 가치관을 쉽게 깰 수 없었다. 그래서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채 한걸음도 다 가기전에 난 멈추고 말았다. 너의 눈에서 또르르 굴러떨어진 한방울의 무언가가 날 가지 못하게 붙잡았다. 무엇인지 알고싶었다. 반걸음 물러섰던 곳에서 다시 한걸음 더 다가갔다. 너가 웅크린채 날 올려다 보고 있었다. 서늘한 눈이 잔뜩 젖은 채 날 보고 있었다. 왜 그랬는진 잘 모르겠지만, 손가락을 뻗어서 너의 눈에서 흘러나온 것에 가져다 댔다. 그건 눈물이었다. 미치도록 뜨거워서, 손이 시렸다. 그대로 손을 떼고 뒤돌아섰다. 더이상은 위험하다고 온몸이 느끼고 있었다. 넌 위험했다. 뒤돌아서서 세걸음쯤 갔다. 하지만, 더이상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가 위험하다고 온몸으로 느끼고는 있었지만,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더 갈 순 있었지만, 차마 발을 더 내딛을 수 없었다. 난 너를 다시 돌아보았다. 그리고.. 후회했다. 내 뒷모습을 보며, 넌 또다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니, 눈물을 쏟고 있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쉴새없이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난 포기했다. 그리고 이젠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이젠 너를 알고싶다는 욕구가 더 강해졌다. 난.. 마음을 굳게 먹고, 아직도 내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차가운 너를.. 품에 그대로 안아버렸다. 내게 기대어 오는 너가 느껴졌다. 웅크린 작은 몸이 내 품안에서 떨고있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내 옷이 따뜻한 무언가로 졎어가고 있는것도 느꼈다. 난 한숨을 내쉬었다. 뭐에 대한 한숨인지 모르겠다. 가치관을 잃은 것에대한 건지.. 아님 너로 인해 무언가를 포기해버린 나를 향한 건지.. 잘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너를 만난게 나라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것 일지도 모른다. 딱 그만큼만 혼란스러웠다. 한숨이 한번 나올 정도로만.. 난 너를 더 세게 끌어 안았다. 냉기가 옷을 뚫고 스며들어와, 나를 따갑게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난 너가 내 옷깃을 세게 그러쥐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너도 나와 비슷한 마음일 것이라는 것을.. 앞으로 우린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둘다 알고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널 안고 있었을까.. 밤바람이 점점 더 차가워 지고 있었다. 너의 몸이 차서 더 그렇게 느낀 걸지도 모르겠지만.. 난 입고있던 두꺼운 코트를 벗었다. 너가 날 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난 코트를 벗고, 널 일으켰다. 내가 너한테 코트를 입히려고 하자, 넌 고개를 저었다. "입어." 널 보고 한 첫마디였다. 내 강압적이고도 단호한 말에, 넌 그저 날 젖은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난 다시 코트를 올려서 너의 어깨위에 덮었다. 그리고 바람이 새어 들어가지 않도록 단추를 채웠다. 넌 얌전히 내가 하는대로 있었다. 단추를 다 채우고 나서 널 안아들었다. 너무도 쉽게 들리는 몸에 살짝은 놀랐다. 하지만.. 그래.. 넌 인간이 아니었으니깐.. 조금 솔직해 지자면.. 널 다른사람에게 보이기 싫었다. 그래서 굳이 너에게 코트를 입힌 것이었다. 새벽이라 사람이 별로 다니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에겐 너무도 신비하고, 또 어느샌가 나에게 소중해진 너를 남의 눈에 보이기 싫었다. 유치하다면, 유치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숨을 짧게 내쉬며, 날 올려다 보고 있는 널 마주 내려다 보았다. 널 말로 표현 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는 없었지만, 가장 비슷한 것을 찾자면, 아름답다는 단어이다. 넌 아름다웠다. 달빛을 반사해서 빛이나는 몸도, 졎어있는 투명한 눈동자도, 목을 살짝 덮는 부드러운 갈색의 머리카락들도 모두 다 아름다웠다. 널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 21년간 살면서, 이런 소유욕은 처음이었다.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모든것을 처음 겪고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있는 내가 너무 생소했다. 하지만, 그런 널 잃긴 싫었다. 널 그렇게 내 코트로 꽁꽁 감싼채, 나는 널 나만의 공간으로 데려왔다. 난 오피스텔에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방해될 것는 없었다. 내 공간에 널 안고 들어서자, 너의 그 투명한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난 너를 소파에 앉혔다. 실내인데도 아직도 너의 몸은 얼음같이 차가웠다. 문득, 너의 몸이 깨어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근거없는 두려움이 앞서서 난 보일러를 틀었다. 네가 나처럼 녹길 바라며, 나처럼 뜨거워 지길 바라며 보일러를 세게 틀었다. 소파에서 날 지켜보던 너가 드디어 입을 떼고 말했다. "나 안추워." 너의 첫마디었다. 처음엔 너가 말한건지 몰랐다. 너의 목소리가 나에게 채 도달하기도 전에 공기에 녹아들어간 것만 같았다. 다시금 느꼈다. 그런 목소리를 소유하고 있는 너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시 듣고 싶었다. 그래서 못들은 척 물었다. "뭐?" 나의 물음에 너는 친절히도 다시 말해주었다. "나, 안 춥다고." 너의 말에 난 보일러 온도를 조금 낮추었다. 하지만 끄진 않았다. 난 너에게 다시 다가갔다. 코트가 불편해 보였다. 머리만 내놓고, 나머지는 코트속에 묻혀버렸으니깐.. 난 코트의 단추를 다 풀어주었다. 그러자 그 매끄러운 어깨 위로 코트가 흘러내렸다. 코트가 흘러내리자 너의 나신이 다시 드러났다. 하지만, 넌 딱히 가리려 하지 않았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넌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난 하늘을 바라보는 너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너의 눈동자에서 그리움을 잃어내었다. 하늘을 그리워 한다..? 대체 너는 누구일까.. 왜 갑자기 내앞에 나타난 걸까.. 알 수가 없었다. 복잡해진 머리를 정리하고 싶었다. 난 샤워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끔 머리가 복잡해졌을때, 뜨거운 수증기가 가득 찬 욕실에 파묻혀서 생각을 정리하곤 했으니깐.. "씻을래?" 너의 몸은 너무도 깨끗해서 투명할 정도였지만, 예의상 물어보았다. 넌 고개를 저었다. 그걸 확인한 나는 욕실로 들어왔다. 뜨거운 물을 틀었다. 샤워기에서 뿌려지는 물이 온전히 나의 몸에 닿아왔다. 점차 습해지는 공기를 느끼며, 난 많은 생각을 했다. 물론 전부 다 너에대한 생각이었다. 그러다 문득 나도 씻으면 너처럼 깨끗해 질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타올로 박박 몸을 문질렀다. 하지만 나는, 내 기억속의 너처럼 투명해 지지는 않았다.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엔 내가 있었고, 그옆엔 내 기억속의 너가 있었다. 너가 누군진 잘 모르겠지만, 너가 이미 내 안 깊숙히 들어왔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거부할 수가 없었다. 거부할 수록 숨이 탁탁 막히는 느낌이 들었으니깐.. 이 감정이 뭔지 모르겠어서 더 문제였다. 호기심? 절대 아니다. 그렇게 가벼운 감정으로 정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 아니다. 사랑보다는 덜 달콤하지만, 더 깊은 감정이다. 집착? 이것도 아니다. 내가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더 강했다. 정의를 내릴 수가 없었다.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너조차 정의를 내릴 수 없으니, 너에대한 감정은 더더욱 그럴 수 밖에.. "후우..." 깊은 한숨을 다시 내쉬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지금 당장 너는 내 곁에 있으면 되고, 난 널 볼 수 있으면 된다. 그게 전부이다. 오직 그거면 되었다. 난 거품들을 빨리 씻어 내고, 몸의 물기를 채 말리지도 않은채, 너만큼이나 새하얀 욕실가운을 입었다. 그리고, 욕실문을 열고 너가 있을 거실의 소파로 향했다. 내 예상과 같이 소파엔 너가 있었다. 처음 봤을 때 처럼 몸을 웅크린채로.. 넌 욕실에서 막 나온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면, 내 발은 나도 모르게 또 너에게로 다가간다. 난 너의 옆에 털썩- 앉았다. 내가 옆에 앉자, 넌 말없이 하늘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넌 하늘을 보았고, 난 너의 얼굴을 보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우리둘의 숨소리만 들렸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안졸려?" 너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조차 우스웠지만, 너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난 인간이기에 너에게 걸맞는 질문은 해줄 수 없었다. 내 질문에 너가 짧게 웃는것도 같았다. 너무 순식간이어서 제대로 보지 못해서 확신하진 못했지만.. "조금.." 내 질문에 대답하는 너의 목소리에 약간은 웃금기가 머금어져 있었다. 너의 대답에, 난 벌떡 일어섰다. "가자." "...어딜?" 눈을 동그랗게 뜨며, 투명한 눈동자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는 너의 손목을 잡아서 일으켰다. 그러면 넌 또 순순히 나에게 끌려와 준다. 널 이끌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들어와서 불을 켜니, 책상과 침대로만 이루어진 단조로운 공간이 불빛아래 노출되었다. 식상하고 평범한 공간이었지만, 너의 눈은 호기심을 담고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난 나의 침대에 앉아서 그런 너를 지켜보았다. "뭐를 그렇게 보는거야?" "그냥.. 다." "다..?" "....응. 여기있는 모든것에.. 너의 모습이 묻어있어." "........"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물건에 내 모습이 묻어있는거야 당연했지만, 보통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드물지 않은가.. 한참을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너는 곧 다 둘러본건지 내 옆으로 와서 같이 침대에 앉았다. 잠시 그렇게 우리는 말없이 앉아있었다. 너가 발가락을 꼬물꼬물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너의 발가락들을 한참을 바라보다 시선을 조금 위로 옯기니, 새하얀 허벅지가 눈에 들어왔다. 문득 너가 나신이었다는 것을 상기해 내며, 좀더 시선을 위로 옮겨갔다. 허벅지를 지나 너의 부드러워보이는 배가 보였으며, 작은 돌기가 자리잡고 있는 마른 가슴이 보였다. 대체적으로 말랐고 하얬다. 하지만 안쓰럽다는 생각보단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도드라진 쇄골과 그 사이 정확하게 자리잡고 있는 점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쇄골과 점 주변을 살살 쓰다듬자 팔을 뒤해서 침대를 짚고 몸을 지탱하는 너였다. 지독하게 관능적이었다. 방이라서 그런지 거실에서와는 공기가 또 묘하게 달랐다. 덜 서늘했으며, 살짝 달아올라 있었다. 쇄골을 만지작 거리던 손을 아래로 내려서 허리를 감쌌다. 얇은 허리가 한팔에 다 들어오고도 남았다. 가슴속에서 새로운 욕망이 피어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감싼 허리를 내쪽으로 당겼다. 너가 스르륵- 미끄러 지듯이 딸려왔다. 너의 쇄골에 입술을 묻으며 손을 더 아래로 내렸다. 확인해 보고 싶었다. 너도 나와 같은 욕망을 느끼고 있는건지.. "하아.." 작은 한숨소리와 함께 내 손 안에서 꿈틀거리는 너의 것이 느껴졌다. 그걸 깨닫는 순간 더는 지체하지않았다. 새롭게 떠오른 욕망이 날 지배하게 놔두었다. 시리도록 차가웠던 너는 그 순간만큼은 나만큼이나 뜨거웠다. 명백히 서로가 서로를 원하고 있었으며, 조금은 부드럽게, 하지만 조금은 거칠게 우리는 그렇게 함께 밤을 보냈다. . . . 눈을 번쩍 떴다.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셨지만, 눈을 애써 뜨고 옆을 바라보았다. 다행이었다. 꿈인 줄만 알았는데, 너가 내 옆에 누워있었다. 넌 그 투명한 눈동자를 오직 나에게만 고정 시킨채 있었다. 난 널 꼭 껴안으며 얼굴가득 미소를 지었다. 이런게 행복인가 싶기도 했다. 너와 맨살을 마주하고 눈을 맞추니, 어제 기억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 "하아.. 기억해 줘.. 난.. 김..종현..이야.." "후으.. 최민호. 너도 기억해." 이 말을 하고, 움직임을 빨리했다.기억하라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동시에 신음을 밷어낸 너였다. 그것이 나를 더욱더 쾌락의 길로 이끌었다. "후욱- 김종현." "흐읏.. 으응..." "내 이름. 불러줘." "읏.. 하아.. 민호..야.."』 내 요구에 얼굴을 붉히며 그 예쁜 입술에 내 이름을 담은 너였다. 그때의 설렘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종현아.." 내 부름에 내 허리를 꼭- 감아오는 얇은 팔이 있다. 한번 더 불러 보았다. "김종현.." "왜.. 민호야.." 너의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자마자 그 선 고운 입술을 그대로 내 입에 담았다. 조금은 외설적인 소리가 방안을 가득 매웠지만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공간에서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서로의 입술에 머물렀다. . . . (Jong-hyun) 자살을 했다. 더이상 삶의 의미도 없었고, 살고 싶지도 않았으며, 이런 날 말려줄 사람조차 없었다. 내 인생은 지긋지긋하고 구질구질했지만, 끝은 비교적 깔끔했다. 이를 악 물고 절벽 아래, 파도 속으로 뛰어들었다. 눈이 매웠고 코가 아팠고 하는건 제대로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마지막 순간에 내 인생이 다시 한번 눈 앞을 스치고 지나간건 너무도 생생히 기억이 났다. 내 인생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새빨간 피로 얼룩진 내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채 들기도 전에, 너무도 거친 물살에 의해 난 의식을 잃었다. . . . 죽지 못하고 다시 살아난 건 줄알았다, 처음엔. 흐릿한 눈을 들어서 앞에 시선을 고정시켰을땐, .. 차가운 인상의 사람이 날 내려다 보고 있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난 죽은 것이었다. 웃기게도 난 숨은 쉬고있지 않았으니깐. 그리고.. 말로만 듣던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온통 어두웠으며, 생각보다 불쾌한 감이 멤돌았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내 몸을 보니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신이었다. 그걸 깨달으니 그 불쾌한 기운이 온몸을 더욱 깊이 감싸는 느낌이 들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뭐.. 마음에 안드는 거라도 있나, 김종현군..?" 앞에있는 그 사람의 목소리가 너무도 시려서 재빨리 도리질을 쳤다. 내 행동에 짧게 웃던 그가 말을 이었다. "엄청난 죄를 저질렀군 그래." "......." "무려 자.살. 이라니.. 젊은 나이에 대단하군.." 고개를 숙였다. 자살이 죄가 되는 건가.. 하지만 하고 싶어서 한게 아니라 세상이 날 벼랑끝까지 몰아붙였다. 난 세상에 버림받았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었기에 도망친것 뿐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를 가만히 쳐다보던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일단 내 소개부터 하는게 좋겠군. 난 이곳의 총 책임자인 key다." "......" 말없이 그를 올려다보고 있으니 그가 말을 이어갔다. "자살을 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모두 이곳에 오게 되있어. 어떤 이유든. 그리고 이 세계에서 온갖 잡일을 떠맡게 되지." "........" "운좋아서 윗사람의 눈에 든 자는 환생을 하기도 해. 물론 인간이 아닌 동물로 살겠지만. 그래도 영원히 여기 처박혀 있는 것 보단 동물로라도 사는게 낫겠지." 남자의 말을 듣고 고개를 푹- 숙이며 착잡한 심정을 한숨으로 내보냈다. 세상으로 부터 도망쳤는데.. 또 다른 끔찍한 세상이 날 기다리고 있다니.. 끝없이 절망적이었고, 자포자기의 심정마저 들었다. 어느 세계이건 나에겐 희망은 없었다. 이런게 나의 운명이라면 받아 들이는 수 밖에.. 난 힘없는 인간일 뿐이니깐.. 그런데 땅만 쳐다보고 있는 내 턱을 서늘한 손길이 잡아서 들어올렸다. 내 턱은 그의 손길에 따라 천천히 들어올려 졌으며, 난 까만 눈동자를 마주하게 되었다. 너무 짙고 깊어서 차마 눈을 뗄 수 조차 없어서 계속 마주하고 있었다. 지독히도 외로워 보이는 까만 눈동자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해서 콧등을 찡긋찡긋 하고 있는데, 시선을 마주한 채로 그가 입술을 달싹였다. "근데 말이지.. 내 권한으로 너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고 싶거든." "......?" "다시한번 기회를 줄께. 단 3시간 안에 널 마음으로 품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만약 실패하면 넌 영영 사라지겠지." "........" "내가 줄수있는 시간은 딱 3시간 뿐이야. 더 이상 넘어가면 더 윗사람한테 걸리거든. 하지만 만약에 그런 사람을 3시간 이내에 만나게 되면, 그때부턴 인간의 감정이 개입되기 때문에 아무리 윗사람도 널 함부로 데려올 순 없어. 따라서 넌 다시 삶을 살 수 있게 되지." "........" "어때, 해볼래? 약간 위험하긴 하지만.. 그래도 세상이 너에게 상처만 안겨준게 아니라는 것만은 명심해."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처와 고통만 끌어안은 채, 여기에서 영원히 썩어나기엔 너무도 불공평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에게 고맙다고 채 말하기도 전에 갑자기 또 정신을 잃었던 것 같기도 했다. . . . . .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원래의 세상에 돌아와 있었다. 머리가 어지러워서 잠시 눈을 감고 그대로 있었다. 밤인지 어두웠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온몸이 서늘해서 내려다 보니, 난 그 세계에서와 같이 나신이었다. 이상하게도 딱히 부끄럽거나 하진 않았지만, 온몸이 싸늘하게 식은 기분이었다. 아까 그 Key라는 사람처럼.. 그러다 곧 깨달았다. 난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으며, 거의 죽은거나 다름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 3시간 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무릎을 끌어안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나 보았다. 애석하게도 늦은 밤인데다 너무 으슥한 곳에 있어서 사람이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애써 사람을 찾으러 나서진 않았다. 어차피 날 마음으로 품을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찾아나선다고 해서 찾아지는게 아니니깐.. 그저 나의 운명만 탓하며 그렇게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이젠 시간도 얼마 남질 않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초조했으나 방법은 없었다. 고개를 무릎에 파묻었다. 눈가가 습해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아직 눈물을 흘리기엔 이르다고 생각되었다. 얼마나 그렇게 눈물을 참고 있었을까.. 어디선가 들려오는 발소리에 무릎에 묻고있던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날 바라보고 있는 짙은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날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흔들리는 눈동자를 한 그 사람을 보자, 기대가 되면서도 불안했다. 떨리는 눈으로 그를 마주하고 있는데, 그가 가까이 다가와서 내 어깨를 짚었다. 너무 따뜻해서 아까부터 참던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다. 그런데, 그는 내 눈을 한참 들여다 보더니 갑자기 한걸음.. 물러서려 했다. 꾹꾹 참아오던 눈물이 볼을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또 버림받는 건가.. 난 이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걸 바래서는 안돼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내 눈물을 보고 당황한 듯 싶었다. 그러더니 나에게 아까보다 조금 더 다가왔다. 내 눈물을 닦아내는 손이 조금 떨리는 게 다 느껴졌다. 눈물을 닦아낸 그는, 내 눈물이 묻는 자신의 손가락을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며 그는 돌아섰다. 그가 뒤돌아 섬과 동시에 내 눈에선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이젠 참을 필요가 없었으니깐.. 이제 곧있으면 3시간이 다 차게 되고, 난.. 그래.. 영영 사라지겠지.. 어쩌면 그게 나한테 걸맞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자꾸만 나한테 희망을 심어주려는 걸까.. 날 떠나던 그가 별안간 걸음을 뚝- 멈추었다. 그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보는 순간 눈물을 닦을까 생각도 했지만, 이미 너무 많이 흘려버렸고, 아직도 흐르고 있기에 차마 닦을 수 없었다. 나신인데다, 다짜고짜 우는 내가 이상했겠지.. 날 두고 그냥 간다고 해도 전혀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했다. 난 완전한 인간이 아니었으며, 난 내가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 조차도 신기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날 그냥 두고 가는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뒤돌아선 그가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날 자신의 품에 감싸안았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음과 동시에 다른 의미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난 그의 옷깃을 그러줘며 속으로 되뇌었다. 날 구해줘서 고맙다고.. 한참을 그의 품에서 눈물을 흘리다가 슬슬 멎어 갈때쯤, 그가 갑자기 몸을 떼었다. 난 살짝 당황해서 그를 보았지만, 불안하진 않았다. 3시간이 지났는데도 내가 그 세계로 돌아가거나 사라지지 않은 것을 보면, 그가 날 마음으로 품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했으니깐.. 그가 별안간 자신의 코트를 벗었다. 난 지금이 추운 겨울이라는 것을 인지하며 고개를 저었다. 내 몸이 서늘하긴 했지만, 하나도 춥지는 않았기에.. 오히려 인간인 그에게 필요한 거였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해왔다. "입어." 순간 그 목소리에 넋을 놓았던 것 같기도 했다. 거부할 수가 없는 목소리였고, 다른 의미로도 들릴 수 있는 위험한 목소리였다. 굳어져 있는 날 보더니 꿋꿋하게 내 위에 코트를 입힌 그였다. 그리고 그가 날 안아들었다. 충분히 걸어갈 수 있었음에도, 그가 하는데로 가만히 있었다. 그가 날 안고 데려간 곳은 그의 집인 듯 했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누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살짝 떨었던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다행이 내 바램대로 아무도 없었다. 그는 날 쇼파위에 내려놓았다. 그가 날 소파에 내려놓았을 때, 코트가 날 덮고있어서 중심을 못잡는 바람에 살짝 휘청거렸지만, 다행이 그는 못본 듯 했다. 그는 보일러를 틀려는 듯 가더니, 갑자기 보일러 온도를 마구 높히기 시작했다. 난 그가 코트를 벗어서 나한테 입혀주었던 것을 생각하며 난 춥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그게 내가 그에게 한 첫마디 였다는 것은 인지하지 못한채.. 그런데 분명 그는 알아들은 것 처럼 보일러를 만지던 손은 멈칫- 했는데, 다시 되물어 왔다. 난 한없이 낮은 그의 목소리가 좋다고 생각하며 다시금 말해주었다. 난 춥지 않다고.. 그리고 속으로 덧붙였다. 너가 있어서 충분히 따뜻하다고.. 그는 보일러를 끄는 대신 온도를 살짝 낮추고는 다시 내게로 왔다. 코트가 날 덮고 있는것이 갑갑해 보였던 건지 그가 코트 단추를 다시 풀어주었다. 코트가 어깨로 흘러 내려짐과 동시에 그가 내 몸을 훑는 것이 느껴졌다. 내 속에서 부끄러움이 고개를 살며시 드는 바람에, 괜시리 아무것도 없는 하늘로 눈을 돌렸다. 만약.. 만약 그가 내게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다시 저기로 돌아갔겠지.. 난 하늘로 눈을 돌리느라 잠시 마주하지 않게 된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 바로 앞에 있었지만, 그리운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게 아련해 졌다. 언제 이렇게 이 사람에게 마음이 깊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을 보며 그를 생각하고 있을때, 내 생각의 주인공이 말을 해왔다. "씻을래?" 난 그의 얼굴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다시 마주한 얼굴에 너무 가슴이 벅차서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그는 돌아서서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로 들어가는 그의 등을 보고, 또 가운을 입은 그가 욕실에서 나오는 걸 볼 때 까지 혼자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 그는.. 그의 생각은 어떨까..? 날 이렇게 데리고 들어온 것에대해 혹시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날 밤 나와 그는 서로가 서로를 강렬히 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 . . (Key) "너 미쳤어?!" "아니...." "진짜 제정신으로 그런거야?!" "응...." "대체왜!!!! 너 진짜 그레이브젤에 들어가고 싶어서 환장한거야?!" "....잖아.." "...뭐?!" 그 바보같은 김종현이 나를 "못알아 보잖아.." 내가 누구때문에 자살했고, 누구때문에 힘들게 이 위치까지 올라왔는데.. 이런 날.. "기억조차 하지 못하잖아.." 눈물이 툭- 떨어진게 느껴졌다. 한손으로 훔쳐내면, 이번엔 반대쪽에서 또 떨어진다. 어둠의 세상에서 가장 냉정한 관리자라고 불리는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는지, 아까까진 불같이 화만내던 태민이 조심조심 입을 열었다. "그래도.. 총책임자라고 거짓말 하는것 까진 그렇다 쳐도, 자살한 인간에게 기회를 주고, 그걸 조작해서 아예 운명을 바꿔버린건 너무 큰 죄야. 알잖아." "알아..." "한 사람의 운명이 바뀌면, 연결되고 연결되서 인간세상의 미래조차 다 바뀐다는거.. 다 알고 있잖아." "응..." "근데, 왜, 그랬어." 한마디씩 강조하며 하는 말에 조용히 대답했다. "말했잖아. 그가 날 기억하지 못해서라고." "김기범.." 알 수 없는 눈으로 날 바라봐 오는 태민이다. 그래.. 이해할 수 없겠지. 자살한 주제에 제법 높은 자리까지 올라온 내가, 얌전히 있지는 못할망정 중죄를 저질러 버렸으니.. 그런데.. 태민보다는 내가 더 충격이 컸다. 김종현은 날 끝내 알아보지 못했으니깐.. 자기대신 희생한 날, 이렇게 새카맣게 잊어버리다니.. 진짜 나빴다. 그리고.. 그런 나쁜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게, 멍청하게 짓이나 하고.. 김기범.. 넌 하여튼 정말 못말린 다니깐.. 『"기버마! 안녕! 난 종현이 형이야!" "응. 안녕." 첫 만남이었다. 고아원에서 날 데려간 아주머니네 집엔 착한 형이 있었다. 형과 늘 붙어다녔다. 동네 사람들도 우리 형제를 누구나 다 알았다. 우리도 우리가 사이좋은 형제라는 것에대해 자부하며 지냈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불만이 되었다. 우리가 형제라는 것에. 난 형이 좋았다. 그게 단순히 좋은 감정만이 아니라 문제였다. 난 형제라는 관계가 싫어졌다. 난 그때부터 죄없는 형한테 짜증을 냈다. 형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김종현은, 내 착한 형은 모두 다 받아주었다. 사춘기라서 그렇다고.. 그럼 난 또 바보같이 더 짜증을 내었다. "형. 나 형 좋아해." 갑작스런 내 말에 살짝 당황한 김종현이 보였다. 그러고는 바보같이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도 너 좋아해, 기범아.." "그런 의미 아니라는거 알잖아, 김종현." 내 말에 딱딱하게 표정이 굳어버린 김종현이었다. 그러나 난 멈추지 않았다. "김종현. 난 오래전부터 너 좋아했어. 어차피 우린 진짜 형제가 아니니깐 상관없잖아?" "기..범아.." "김종현.. 니가 나 때문에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다른 사람 말고.. 오로지 나 때문에.." "......." "내가 널, 사랑한다고.. 알아들어..?" 내 말에 적절한 대답을 찾으려 노력하던 김종현의 표정이 생생히 기억이 났다. 내 방에서 빠져나갈 변명거리라도 찾는 듯한 얼굴에 난 그대로 내 입술을 그에게로 가져갔다. 날 밀어내는 두 손을 저지하고 그대로 밀어붙여 버렸다. 그때, 김종현은 울었을까.. 눈물은 끝내 보이질 않았지만, 갑자기 방문을 열고 우리를 그대로 봐버린 부모님을 보았을 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난 몇대 맞는 걸로 끝났지만.. 내가 김종현한테 고백을 한 그 해부터 불행은 시작되었다. 아니, 내가 김종현한테 고백한 그 자체부터가 불행일 지도 모른다. 때아닌 갑작스런 부도에 온 가족이 정신을 못차렸다. 진짜인지 모를 교통사고라는 이름하에 양아버지, 즉 김종현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충격이 채 가시기 전에 사체업자들이 조폭까지 끌고와서 눈앞에서 처참히 양어머니를 살해했다. 김종현은.. 새빨갛게 물든 집을 보고는 체념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 표정이 너무도 싫었다. 평소처럼 웃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거의 불가능 했다. 우리는 붙잡혀갔다. 생각보다 유들유들하게 생겼다는 그들의 주장에 따라 우리는 팔려가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조폭 보스의 눈에 들어서 시창가로 팔려가는 처지는 면했다. 절대, 다행이 아니었다. 보스가 김종현을 내 눈앞에서 탐할땐.. 정말이지,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죽어버리면 김종현은 진짜 혼자 남기에 겨우 버텨내었다. 김종현이 잠들었을때 보스한테 부탁을 했다. 김종현 대신 내가 뭐든지 다할테니, 제발 종현만은 이곳에서 보내달라고.. 그때, 보스는 내가 하는 것에 따라 달렸다고 했다. "너네.. 그렇게 의좋은 형제라며..? 그럼, 너가 너네 형을 여기서 쫓아내. 단, 제발로 걸어나가도록 만들어. 괴롭혀서." "......." "설득한다거나, 뭐 그런 허튼짓 하면 둘다 죽어. 너가 김종현을 죽어라 괴롭혀서 여기서 직접 자기 발로 나가게 만들어." 잔인했다. 내가 김종현을 죽을 만큼 아프게 해야, 김종현이 날 두고 스스로 나갈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참의 고민끝에 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보스, 뿐만이 아니라 여럿이 지켜보는 가운데.. 난 김종현을 안았다. 보스한테서 얻어낸 온갖 도구들을 사용해서, 나만 보면 치가 떨릴수 있도록 김종현을 묶어놓고 잔인하게 안아버렸다. 김종현은 잔인하게 자신을 탐하는 날 견디지 못하고, 내 바램대로 자기 발로 도망나갔다. 배신감을 느꼈겠지.. 어쩌면 날 증오할지도..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가 이곳을 벗어나서 행복할 수만 있다면.. 난 일주일간 보스의 충실한 노예 역할을 하며 김종현이 도망칠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나서 내 인생에 최초이자 마지막이 될 살인을 저질렀다. 나에 의해 처참하게 최후를 맞이한 보스를 보며, 난 손목을 그었다.』 내 행동에 후회는 없었다. 김종현만 행복하면 되는거니깐.. 하지만, 자꾸만 불길했다. 내가 아는 김종현은 우유부단하고, 바보같이 착해빠져서, 가족들이 다 죽고나서 자기혼자 행복하게 살진 못할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든 생각은, 여기서 최대한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되야겠다는 것 하나였다. 내가 사랑하는, 그 바보같은 김종현을 위해선 그 방법밖에 없었다. 난 이 세계의 규칙을 하나씩 알아가며, 높은 사람들 눈에 띄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그 결과, 자살한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다는 어둠의 세상 관리직을 얻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내 예상대로 김종현은... 자살해서 이곳으로 들어왔다. 날 알아버지 못하고 눈만 흐릿하게 뜨고 있는 그가 미웠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착해서, 미안함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자살했을 그가 또 안쓰러웠다. 절벽에서 뛰어내리다니.. 물을 그렇게도 무서워 했으면서.. 난 바보같은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을 주었다. 최민호.. 솔직히 변수였다. 내가 까마득히 어릴적 고아원에 있었을 때, 유일하게 사람처럼 보였던 아이였다. 어린나이에도 그가 생각이 깊고, 다정했으며, 한결같았던 아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갑자기 그를 왜 떠올렸는진 몰랐지만, 일단 그를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정이 많았고, 아픔을 지닌 아이였으니깐, 김종현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깐.. 일단 김종현을 그의 주변으로 내려보냈다. 성공하지 못하면, 나는 물론 김종현 또한 그곳에 들어가는 걸 면치 못하리라는 것은 알고있었다. 그레이브젤.. 말 그대로 지하감옥이다.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었다. 계속 고통을 받던지, 아님 영원히 사라지던지 둘중 하나였다. 하지만, 김종현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감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보란듯이 나의 작전에 성공하였다. 최민호가 마음을 움직이는 바람에 그는 다시 이곳에 오지 않아도 되었다. 다행이었다. 이젠 내가 할일은 다 했다. 고통받아도 좋고, 사라져도 좋았다. 내가 끔찍히도 사랑했던 김종현이 남아있는 한, 나도 아주 사라지는 건 아니니깐.. "기범아.. '온유'님이 불러." 태민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해왔다. '온유'는 저승계의 총책임자였다. 아무도 그를 거역할 수 없으며, 그는 저승과 이승을 모두 관리하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신'과 흡사한 존재였다. 난 두려운가? 대답은 '아니' 이다. 전혀 두렵지 않았다. 마음을 편히 비우고, 난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는 태민을 따라나섰다. 길지 않았던 삶이지만, 자유롭게 살았고, 원하는 만큼 사랑을 했으며, 내 사랑을 지켜내었다. 이제 영원히 사라져도 여한이 없었다. 입엔 여유롭게 미소마저 피어올랐다. . . . (Jong-hyun) 행복했다. 이런게 행복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 아니 민호와 나는 이젠 함께 하는게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해졌다. 햇살이 날 감싸고 있는 민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민호가 눈이 부신지 눈을 찡긋찡긋거리다, 어느순간 눈을 팟- 떴다. 자다 깨서 쌍꺼풀이 진하게 진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부르럽게 미소지으며 날 꽉- 안아오는 팔이 있었다. "잘잤어?" "응.." 가득 잠긴 저음의 목소리가 이렇게 멋있게 들릴 순 없었다. 품에 안겨있다가 살며시 고개를 들면 입을 맞춰온다. 민호의 혀가 내 아랫 입술을 살짝 핥자, 저절로 입술이 벌어졌다. 입안으로 부드럽게 침투해온 혀는 가볍게 안을 훑고 빠져나갔다. "모닝키스.." "풋.." 잠긴 목소리로 장난스럽게 말해오는 민호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왜웃냐고 중얼거리며 내 목에 입술을 묻는 민호를 살짝 밀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너 일하러 가야되잖아.." "조금만 있다 가도 돼." "안돼. 늦어." 제법 단호한 나의 목소리에 몸을 일으키는 시늉을 하던 민호는 방심하고 있던 나의 허리를 잡아채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으아아!" 내 입에선 제멋대로 괴상한 비명이 튀어나갔지만, 민호는 상관하지 않고 내 맨 몸을 쓸어내렸다. "흐읏.. 진짜.. 최민호.." 내가 샐쭉 눈을 흘기면 미소로 화답하는 민호가 있다. "종현아." 그의 나른한 목소리에 눈을 감으며, 몸에 힘을 슬며시 풀면 기분좋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종현아." 다시한번 웃음기 담긴 목소리로 밀해오는 민호에 이번엔 작게 대답을 했다. "응.." 대답을 하면, 날 매만지던 손이 더 아래로 향해서 내 것을 감싸는 따뜻한 손이 있다. 내 몸은 차가웠지만, 민호의 몸은 따뜻했다. 그래서 서로가 더 서로를 원하는 걸지도 모른다.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예뻐보이지..?" "..하여튼.. 흐읏.. 능글맞아.." 신음이 또 제멋대로 나가서 입을 꾹 다물면, 내 것을 감싸고 있는 손의 움직임을 빨리하는 얄미운 최민호의 손이있다. 거기에 맞춰서 내 몸도 움찔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작은 소리와 함께 액을 분출해내면, 곧이어 비로 안으로 침범해 들어오는 기다란 손가락들이 있었다. "하앗..! 아침부터 뭐하는.. 읏..!" "빨리 끝낼께." 빨리한다면서 손의 움직임은 느릿하기만 하다. 감각이 온통 아래로만 향해있는건지, 손가락의 느낌이 너무도 생생했다.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던 손가락들이 좀더 깊숙히 파고들었다. "흐으응..!!" 정신없이 내밷어진 소리에 민호가 씩- 웃더니 손가락들을 확 빼냈다. 갑자기 빠져나가는 바람에 허전함을 느낄새도 없이, 민호가 내 위에 올라탐과 동시에, 더 큰 것이 침범해 들어왔다. "으으..윽.." 꽤 많이 한것도 같은데 여전히 밀려오는 고통을 삼키고 있으면, 여전히 웃는 얼굴로 내 입술을 찾는 민호가 있었다. 입술이 맞닿고.. 혀가 입술을 가르고 안으로 들어왔다. 키스에 집중하느라 신경을 안쓰던 아래에서 갑작스러운 자극이 왔다. 서서히 움직이는 민호에 손을 올려 민호의 목을 감쌌다. 여전히 입술은 민호한테 맡겨둔 채였다. "윽..흐읏.." "후으.." 아픈데, 그것마저 행복했다. 민호가 좀 버거웠는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면, 난 민호를 위해 다리를 더 벌려주었다. 민호가 조금이라도 편하길 바라며. 허공에서 내 다리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본 민호가 좀더 깊숙히 안으로 파고들었다. 민호의 혀도, 민호의 것도 전부 다 날 꽉 채워왔다. 그리고.. 내 마음마저도 전부 다. 점차 호흡이 가빠와 져서 헐떡거리면 입술을 살짝 벌려 숨쉴 공간을 마련해 주는 민호였다. 그리고 움직임을 점차 빨리했다. "하읏..!! 하아앙..!!" 내 민망한 신음들이 공기중으로 흩어져졌다. 민호에겐 더 자극이 되었는지 더욱 속도가 빨라졌다. 반복되는 자극에 내것도 다시 부푼것이 느껴졌다. 민호가 강하게 안으로 치고 들어오자, 내 입에선 또 제멋대로의 신음이 흘러나와서 민호의 입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잠시후, 민호의 혀가 입안에서 빠져나갔고, 동시에 민호가 더욱 깊숙히 안으로 들어오며 내 위로 엎어졌다. 민호의 무게가 느껴진다 싶었는데, 내 안으로 따뜻한 것이 퍼져나갔다. "으응.." 여운이 남아 눈을 감고 민호를 느끼고 있는데, 내 입안으로 다시금 들어오는 혀에 민호의 목에 둘렀던 두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에 민호가 손을 내려 내것을 다시한번 감쌌다. 내것은 민호의 손이 닿자마자 바로 액을 밷어냈다. 민호가 짧게 웃더니 입술을 떼고 몸을 살짝 일으켜서 날 내려다 보았다. 민호는 관계를 끝내고 나서, 무방비상태의 날 이렇게 늘 다정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러면 난 늘 민호 앞에서는 벗고있음에도 불구하고 괜한 부끄러움에 또 얼굴을 붉힌다. "종현아." 이렇게 눈물나게 다정하게 부르는 것은 반칙이다. 난 항상 감동받았다. 민호와 있는 모든 시간이 고마웠고, 행복했다. 그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민호는 나를 보며 그저 다정히 웃어주었다. "이제, 일하러 가야지. 늦겠다." 최대한 울먹이는 소리를 내지않으려 노력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내 발개진 눈시울을 발견한 민호는 내 머리를 꼭 안으며 날 더욱 감동시킨다. "또 우네, 우리 종현이. 내가 오늘은 사랑한다고 안말해줘서 그래?" 능글맞은 말투에 눈물이 고인 눈으로 살짝 흘겨보면, 다시금 그만의 낮은 목소리로 내 귀를 울린다. "사랑해.. 김종현." . . . . . "오늘 안나가도 된다고?" "응. 오늘 공휴일이라 일하러 안가도 돼." "아아.." 민호의 말에 달력을 보았다. 오늘 날짜에 빨간색 글씨로 '설날' 이라고 써있었다. 설날.. 벌써 설날이구나.. 쓸데없는 회상에 빠져드는데, 내 어깨를 잡아오는 따뜻한 손이 있었다. "우리, 놀러가자." "..놀러..?" "응. 너랑 같이 가보고 싶은데가 있거든." 민호의 말에 무언의 긍정으로 답했다. 살짝, 아니 많이 설레였다. 민호와 둘이서 여행을 간다라.. 사실상 민호와 항상 같이 있었지만, 그래도 여행은 간적이 없기에 떨리는 마음도 있었다. 민호는 나와함께 어디에 가고싶은 걸까..? 내가 궁금증 가득담긴 얼굴로 민호를 바라보자, 민호가 웃으며 날 욕실로 이끌었다. "난 다 씻었으니깐 씻고나와." "응.." "왜? 씻겨줘?" "아냐. 혼자 씻고 나올께." 난 민호를 뒤로하고 욕실로 들어와서 문을 닫았다. 샤워기를 내 몸을 향하게 하고 물을 틀었다. .......!! 슌간적으로 찬물이 쏟아져 나와서 깜짝 놀랐다. 그러나 너무 놀라서 몸이 굳어져서 난 물을 끌생각도, 따뜻한 온도로 맞출생각도 못했다. 떠올리고 싶지않은 기억이 내 머리에 찾아들었기 때문에.. 과거의 일이 불쑥불쑥 생각나버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더러우면 씻어야지. 안그래?" 난 두려움에 떨며 울었지만,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았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찬물을 틀어 내쪽으로 향하게 했다. 좁은 철장안에 갇혀서 난 꼼짝없이 그 물을 다 맞아야 했다. 옷이라도 입었으면 덜 차가웠을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실 한오라기조차 걸치고 있지 않아서 찬물을 고스란히 맞을 수 밖에 없었다. 너무 추워서 입술마저 파랗게 변해버렸지만, 그 남자는 무자비하게도 내게 찬물만을 뿌려대었다. "흐흡..그만.. 제발 그만..해.." 내가 울면서 애원하면 그제서야 물을 끄고 날 철장 안에서 꺼내는 남자였다. 추위에 덜덜 떨고있으면, 그 남자는 짐짓 불쌍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추웠어? 어이구, 이를 어째.." "흐윽..흡.." 남자는 날 감싸안으며 내게 따뜻해보이는 차가 담긴 컵을 내밀었다. 안에 약이 타져 있을 것이라는 것은 그동안에 경험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지만, 난 그냥 마실수 밖에 없었다. 춥기도 했고, 안마시고 반항한다면 손해보는 건 나일테니깐.. 내가 억지로 그 차를 마실동안 그 남자의 입꼬리는 점점 더 위로 올라갔다. 내가 다 마시고 내 몸을 서서히 점령해가는 흥분에, 티를 내지 않으려 숨을 죽이고 있으면 그 남자는 찬 손으로 강하게 내것을 잡아쥐었다. "흐읏...!!!" 내가 밀려오는 쾌락에 정신을 못차리는 동안 그 남자는 나를 꼼짝 못하게 묶어버렸다. 두 팔이 천장에 달린 줄에 묶였고, 한쪽 다리도 들어올려져서 천장에 달린 줄에 똑같이 묶였다. 중심을 잃어서 휘청거리면, 날 묶은 줄들이 단번에 날카롭게 날 옥매여 왔다. 유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수많은 검은 남자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수치 따윈 들지도 않았다. 당장에 날 지배하는 약기운이 더 컸기에.. 날 괴롭히던 남자는 묶여서 힘들어 하는 날 지켜보았다. 그 검은 눈동자가 조금은 슬퍼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곧 눈빛을 날카롭게 바꾸고 내 것을 쥐는 그 남자의 손에도, 난 그 슬픔이 넘치던 검은 눈동자를 잊을 수 없었다. 내것을 강하게 매만지다 터져버릴 듯 부풀어 올랐을 때, 분출구를 막아버리는 그의 엄지손가락에 난 머리가 하얘져 버렸다. 분출되지 못한 욕망에 이리저리 몸을 비틀면, 남은 한 손으로 내 허리를 꽉 쥐고는 한번에 내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뒤에서 그렇게 날 강하게 침범하는 남자에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렸다. 고개를 떨어뜨려 아래를 내려다 보면, 내것을 단단히 쥐고있는 그 남자의 손이 보였고, 찢어져서 흐른 내 피가 보였다. 피를 보기 싫어 앞을 보면, 우리를 보고 흥분하고 있는 잠시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검은 무리가 있었다 아팠고, 괴로웠고, 힘들었는데.. 죽고 싶을 정도로 참기 힘들었던건.. 날 그렇게 억지로 안았던 검은 옷의 남자가.. 기범이 였다는 것..』 그래.. 기범이 였어. 난 그걸 참지 못하고 죽어버린 거였으니깐.. 형제.. 그래, 형제였지.. 난 기범이를 믿었고, 기범이도 날 아껴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일로 기범이와 같이 그 검은 무리한테 잡혀갔을 때, 단 며칠만에 기범이 마저 검은 옷을 입고 날 괴롭혔었다. 배신감도 들고,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날 강간하면서도 아픈눈을 하고 있는 기범이를 견디지 못하고 난 그곳을 도망쳐 나왔다. 난 몇일 동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떠돌다가 마침내, 한 곳에서 멈추었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 피로 얼룩진 내 기억과는 대조적으로 너무도 새파란 바다에 넋을 잃고 그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득 아래를 보았을 땐, 까마득한 높이의 낭떠러지가 있었고, 그 아래 거친 파도가 절벽을 마치 부수기라도 할듯 맹렬히 치고 있었다. 난 거친 파도의 소용돌이 속에 그대로 묻히고 싶었다. 그러면 이 괴롭고 더러운 기억들이 물에 씻겨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앞으로 조금 다가가니, 눈 앞에 바로 보였다. 절벽의 끝이.. 날까로운 절벽의 끝이 바다와 맞닿아 있는것 처럼 보였다. 멍하니 절벽의 바위에 거세게 부딪히는 파도만 쳐다보고 있으니, 저절로 내 몸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난 거친 파도에 그대로 날 맡겨버렸다. 이것이 내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다. 모든게 끝이라고 생각 되었다. 하지만 다른 세계가 존재했고, 난 어떻게 된건지 다시 살아가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깐 이상했다. 난 왜 다시 삶을 살고있는 거지..? 죽어서 다른 세계로 갔을 때, 나한테 기회를 준다던.. 그 누군가 덕분에.. Key..? 순간 검은 눈동자가 생각이 났다. 누군가와 닮았다고 생각했던 것도 기억이 났다. 누구를 닮았더라.. 날카로운 콧날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 위로 보이는 검고 깊은 눈동자.. 슬퍼보이기도 했고, 외로워 보이기도 했던.. ........!! 내가 알고있는 그런 눈동자는 단 하나였다. 김..기..범..? 아까 자신을 저승의 총책임자라고 소개했던 Key과 슬프고도 차가운 얼굴로 날 안던 김기범의 얼굴이 떠올랐다. Key라고 자신을 고개한 남자가 더 어둡고 날카로워 보이긴 했지만, 동일인물이라고 해도 무리는 없었다. 조금 큰 충격이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만약, 동일인물이 맞다면, 기범이 나보다 훨씬 먼저 죽었었다는 건가..? 그렇다 쳐도, 기범이 날 도와줄 이유가.. 없는.. 『 "김종현. 난 오래전부터 너 좋아했어. 어차피 우린 진짜 형제가 아니니깐 상관없잖아?" "기..범아.." "김종현.. 니가 나 때문에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다른 사람 말고.. 오로지 나 때문에.." "......." "내가 널, 사랑한다고.. 알아들어..?"』 기범이의 갑작스런 고백에 충격을 받은지 채 몇달이 되지도 않았다. 따라서 아직도 그 충격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 고백이 있고나서 정신없이 사건들이 터져서 잠시 덮어두었을 뿐이었다. 기범이가 날 좋아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 오래전 부터 알고는 있었다. 모르는 척 했다. 우리의 관계가 많이 위태로웠다는 것쯤은 알고있었지만, 그 관계라도 잘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게 안전하다고 생각 했다. 아니, 아직 기범의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내 마음에 대한 변명에 불과했다. 사실은 어쩌면 나도 기범이를.. 『"더러우면 씻어야지. 안그래?"』 『"추웠어? 어이구, 이를 어째.."』 아니야..!! 기범은 날 지독히도 아프게 했으니깐.. 기범이는 날 좋아한다고 했으면서.. 배신하고 날 괴롭혔다. 난 아직 기범을 용서 할 수 없었다. 마음이 다시 반대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그런데.. 날 배신했으면서, 날 도와주었다..? 그러니깐.. 기범이 날 도와준게 확실하다면 그 전엔 왜 나를 배신하고 검은 무리에 낀거지..? 그리고 만약 날 배신해서 검은 무리가 되었다면, 왜 나보다 먼저 죽은거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김기범이라는 남자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가 없었다. 난 김기범 때문에 죽었으며, 김기범에 의해 다시 살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날 배신했었다.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임에 틀림없었.. 만약.. 기범이 날 배신한게 아니라면.. 날 도와주려고 일부러 날 괴롭히는 '척' 한거라면.. 순간 감정이 휘몰아치던 검은 눈동자 두개가 동시에 떠올랐다. 기범이 날 안을때 보였던 지독하게 슬픈 검은 눈동자와, Key의 외로움이 짙게 깔린 검은 눈동자.. 그 두개는 완벽하게 겹쳐졌다. 마음이 착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희뿌연 안개가 걷혀지며, 드디어 명확해졌다. 기범은 날 사랑했으며, 날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거였다. 그리고.. 내가 자살할 것을 뻔히 알고 미리 와서 날 도와줄 준비를 한 것이었다. 왜 Key를 보았을 때 진작 이런생각이 안들었는진 모르겠지만, 지금에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오해가 풀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면.. 기범은 어떻게 되는거지..? 내가 민호와 행복하게 지낼 동안, 기범은 그쪽 세계에서 뭘 하고 있는거지..? 아직도 날 사랑한다면.. 혹시라도 행복한 나를 보며, 아파하진 않을까..? 내가 기범이 때문에 죽을만큼 고통스러웠던것 처럼, 기범이도 나때문에 고통스러워 하지는 않을까..? 다시 불행이 반복되는 건 싫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난 불안했다. 내가 봐도 내 모습이 너무 위태로웠다. 거울에 비춰진 내 모습을 보았다. 마치 깨어질 것 같았다. 민호가 날 볼때 이런 모습일까.. 민호.. 만약에 내가 기범에게 가버리면, 내게 마음을 주어버린 민호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엉켜버렸다. 우리 모두 행복할 방법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어느 한쪽은 불행해야 나머지가 행복하다는 엉터리 같은 공식이 나왔지만, 지금으로선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었다. 내겐 선택권이 있었다. 하지만, 선택과는 무관하게 내 마음은 점점 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선택할 것도 없었다. 이미 내 마음은 굳어져 버렸다. 그게 옳은 것일테니깐.. . . . 똑똑- "종현아- 왜 이렇게 안나와? 무슨일 있어?" 내 귓속을 울리는 목소리에 난 또 흔들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건 미안함 때문일 것이다. 그도 나에게 마음을 주었고, 나도 마찬가지이고.. 앞으로 하게될 우리의 마음고생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희생한 기범을 위해 하는 것이 될 것이다. 벌써부터 슬픔이 차고 올라왔지만, 꾹 참고 대답을 해주었다. "곧 나갈꺼야." 목소리가 너무도 차분했다. 그건 이미 결정을 굳힌 탓이리라. 흔들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기범을 위해서, 그리고 민호를 위해서. 미련을 남겨둘수록 서로가 더 힘들 뿐이니깐.. 의미없이 몸에 묻히고 있던 거품들을 재빨리 걷어내고 수건으로 물기를 대충 없앤다음 밖으로 나갔다. 민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아까의 생각들이 다 녹아 없어질 뻔 했지만, 간신히 생각을 붙잡았다. "무슨 샤워를 그렇게 오래해?" 민호의 말에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샤워를 하며 내가 내린 결론을 들으면 넌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지만, 두려움이 더 컸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를 향한 민호의 마음이 얼마나 큰지.. 내가 다시 생각속에 빠져들라고 하면, 날 방해하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머릿속을 파고들어왔다. "이거 입어봐." 민호가 나에게 티와 바지를 건넸다. 실로 오랜만에 입는 옷이었다. 민호가 일하러 나가면, 난 혼자 집에서 기다리곤 했으니깐.. 밖에 나갈일이 없었다. 그래서 옷을 입을 일도 없었다. 어색하게 옷을 팔에 끼워 맞추고 있으면, 민호가 와서 옷을 가져다가 직접 입혀주었다. "옷도 입혀줘야 하고. 아직 애기네." "무슨.." 살짝 흘기며 민호를 바라보았다. 민호는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옷을 입히고. 세심하게 옷 매무새를 정리해 주었다. 이렇게 보고 있어도 보고싶고, 벌써부터 애뜻해 지기만 했다. 정말 내가 기범이 한테 가는 것이 맞는걸까..? 아니다. 벌써 약해지면 안된다. 흔들리지 않기로 다짐했었으니깐.. 난 민호보다는 기범이 한테 먼저 마음을 주었었으니깐.. "다 됬다. 이제 나가자." 이렇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내미는 민호를 보니,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민호가 갑자기 우는 나 때문에 당황한 듯 싶었다. 미안하다고 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 말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민호가 내 등을 쓸어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갑자기 왜울어. 뚝- 해야지." "흐윽..흡..민호야.." "응. 나 여깄어. 그러니깐 울지마. 놀러가는 날 울면 어떻게 해." 날 달래는 다정한 목소리에 내 울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벌써부터 이러면 나중에, 민호한테 이별은 어떻게 말할까.. 민호가 날 일으켜 세우더니, 고개를 들게해서 입을 맞추었다. 갑작스런 입맞춤에 당황해 할 동안 민호는 내 울음을 삼키며 혀를 안으로 집어넣었다. 달래는 듯한 움직임에 나도 서서히 울음을 멈추어 갔다. 숨이 가빠서 헐떡이면서도 먼저 입술은 떼지 않았다. 마지막이 될 것 같단 예감에.. . . . 민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쭉 뻗은 고속도로를 벗어나서 점차 구불거리는 길로 들어섰다. 어딘지는 잘 모르겠지만, 꽤 멀리왔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서로 말이 없어졌다. 이때까지 민호가 배고프냐고 물어서 내가 아니라고 대답한 것 외엔 둘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 그냥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덜컹- 차가 심하게 흔들려서 초점을 앞으로 고정시키니, 앞에는 높은 절벽이 보였다. 그리고, 절벽 가장자리를 따라서 차 한대만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도로가 있었다. 딱 봐도 위험해 보였지만, 민호는 그 도로로 들어섰다. 차가 무섭게 흔들렸지만, 아무도 동요하지 않았다. 민호는 날 왜 여기로 데려왔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여전히 차는 덜컹거리며 까마득히 높은 절벽 위를 향하고 있었다. 절벽은 왠지 거부감이 들었다. 내가 한번 죽었던 곳이기도 하니깐.. 험한 절벽길을 간신히 지나와서 절벽 꼭대기에 도착했다. 민호는 시동을 끄고 날 돌아보았다. 표정이 살짝 굳어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무언가를 눈치.. 챘을 것이다. 자꾸 울기만 하고 말이 없는 내가 이상했을 것이다. 오랜 정적을 깨고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민호야.." "내려." 민호는 짧게 내 말을 끊었다. 불안해할 이유가 없었지만 불안했다. 이때까지 이렇게 나한테 딱딱하게 한적이 없었으니깐.. 민호가 왜 갑자기 차가워 진 것일까.. 우리의 미래를 예측이라도 한 것일까..? 그렇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하야 하는 걸까..? 민호는 차 밖으로 나가서 절벽위로 걸어나갔다. 생각보다 공간이 넓지 않았고, 많이 위험해 보였다. 거의 끝부분에 서있는 민호가 위태위태해 보였다. 몇걸음 떨어져 있지도 않는데 멀게만 느껴졌다. 민호가 날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역시나 강렬했다. 무언가를 원하는 눈빛이었다. 민호의 눈을 피해 난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내려 바다를 보았다. 안개가 너무 짙어서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이 보이질 않았다. "말해." "뭘..?" "대체 왜 그러는지." "......." "뭣때문에 그래? 여행오는게 싫었어?" "......." 무슨말부터 꺼내야 할지가 막막했다. 답답함에 한숨부터 흘렸다. "후우.. 너부터 말해.." "뭘." "여기는.. 왜 온거야..?" 궁금했다. 이 위험천만한 절벽 꼭대기까지.. 몇번이나 아래로 추락할 뻔한 위험을 다 감수하고 이곳에 올라온 이유가.. 민호는 생각보다 간단히 답해주었다. "여기가 하늘이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너가 좋아할 것 같아서 데리고 왔어. 그뿐이야." 하늘이 가까워서 내가 좋아할 거라고..? "넌 항상 하늘을 그리워 했잖아." 너무도 예상밖의 대답에 멍해졌다. 내가 하늘을 그리워 한다..? 민호는 대체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일까.. "난 하늘을 그리워 한 적 없어." "있어. 널 처음 만난 날도 그렇고, 넌 하늘을 그리워 했었어. 그리고 오늘도 차안에서 넌 수십번도 넘게 하늘을 애뜻한 눈으로 바라보았고." 민호의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오늘 하늘을 수십번이나 올려다 본 것은 사실이기에.. 기범때문에 자꾸만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무의식중에 몇번이고 하늘을 보았던 것 같다. 그곳에 기범이 있을테니깐.. 하지만 민호를 처음 만난 날엔.. 아.. 생각이 났다. 그땐, 하늘을 그리워 한게 아니라 하늘을 보며 민호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지만, 오히려 이게 더 잘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끝내버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너무 이를지도 모르고, 너무 깊숙히 들어와서 늦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말할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난 심호흡 끝에 입을 열었다. "민호ㅇ..." "고백하려고 했어." "......?" "하늘보다 날 더 많이 봐달라고. 너가 어디서 왔든, 누구이든 내가 많이 사랑해 줄 수 있으니깐.. 너가 허전해 하는 것 다 채울 수 있으니깐 나 좀 봐달라고 고백하려고 했어." 끝이 과거형이었다. 그렇다면, 민호도 눈치챘을 것이다. 내가 무슨말을 할지.. 눈을 꾹 감고 한숨쉬듯 말을 내밷었다. 민호에게 상처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미안해.." "종현아.." "미안해. 난.. 널 사랑할 수가 없어." "......." "정말 미안해.. 하지만.. 난 기범이를.. 으흑.."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직도 내 마음이 누굴 향해있는지 너무도 헷갈려서 더 아팠다. 이별을 말하는 것도 힘들고, 그냥 참고 민호의 곁에 있는 것도 힘들다. 날 어떻게 해야 할까..? 민호는 조용히 서있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너무 괴로웠다. 가슴이 타들어 갈 것만 같아서 가슴을 움켜쥔 채 그렇게 눈물만 쏟아내었다. 민호는 이렇게 바보같은 날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내가 도리질을 치며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더 꽉 나를 조여오는 팔에 그저 안겨만 있었다.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나와서 눈앞을 흐리게 만들었다. 시야가 답답한 만큼 마음도 답답했다. 뭐가 이렇게 복잡한 것일까..? 민호가 내 턱을 살며시 잡고 들어올렸다. 그리고 날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또다시 흔들리고 마는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면 들려오는 가라앉은 민호의 목소리.. "마지막.. 키스.." 민호의 따뜻한 입술이 내 입술을 덮었다. 곧이어 부드러운 혀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자꾸만 애뜻하게 느껴지는 건 마지막이라서 그런 것일까.. 오늘 아침에 샤워를 하고 나온 뒤부터 나는 쭉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 '마지막' 이라는 단어를 민호의 입에서 직접들으니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난 민호의 곁에서도 행복할 수 없으니깐.. 내가 행복을 바란다는건 너무 이기적일 것이다. 그러나 난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니깐.. 내가 기범이 한테 간다고 해서 행복할 것이라는 장담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기범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에 대한 댓가가 아닐까 싶었다. 우리 누구도 행복해 질 수 없다면, 내 마음의 짐이라도 덜고 싶은 또하나의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키스를 하면서도 딴생각을 하는 나를 민호는 질책하지 않았다. 입술이 아쉬운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민호가 내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가자." "어딜..?" "어디든. 여기 있긴 싫다." "......." "하늘과 너무 가까워서 싫어." 민호의 말에 난 대답을 해주질 못했다. 나 때문이라는 것을 뻔히 알기에.. 민호를 따라 다시 차에 올랐다. 아까 거슬러 올라왔던 그 절벽길을 다시 내려갔다. 위험하고 험한 길이 끝없이 다시 이어졌다. 내 안의 갈등과 흔들림도 이 구불구불한 절벽길 처럼 위태롭고 끝이 없지 않을까.. . . . . . (Key) "부르셨습니까, 온유님." "그래." 잠시 둘다 아무말이 없었다. 그 고요한 정적이 내 숨을 조여왔다. 분명히 마음을 다 비웠는데 불안감이 생겨났다. 뭔가 이상했다. 내가 먼저 다급히 말을 꺼냈다. "제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 압니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내 다급한 목소리를 들은 온유님이 살짝 웃으셨다. 위험했다. 저 웃음이 너무 위험해 보였다. "재밌군 그래. 어떤 벌이든 받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온유님의 말에 난 긴장어린 표정을 지으며 그의 눈을 마주했다. 날 추궁하는 듯한 눈이 아니었다. 그는 눈동자는 재미있다는 듯이 반짝이고 있었다. 잠깐 그의 눈에 안타까움이 스쳐지나 간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근데, 아쉽게도 넌 벌을 받지 않아." "......?" 이건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었다. 대체 무슨 뜻이지..? 내가 벌을 받지 않는다면... 설마.. 설마....!! "Key군 대신, 저 둘이 벌으 받게 될테니깐." ".......!!!"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엔 커다란 거울이 있었고, 그 속에 종현과 민호가 비추어 보였다. 왜 하필 나대신 저 둘인 것일까.. 왜.. 대체 왜 위험하게 그들은 차를 타고 낭떠러지 바로 옆을 아슬아슬하게 달리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종현이는 왜 울고있는 것일까.. 대체 내가 안보는 사이에 어떤일이 일어났었던 것일까.. 분명, 둘이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했었다. 그래서 온유님 조차 다시 종현을 데려오지 못했다. 그런데, 왜 종현은 웃고있지 않고, 울고있는 것일까.. 온통 물음표 투성이였다. "Key군. 자넨 김종현이라는 사람한테 너무 많은 짐을 안겨주었어." "......." "김종현을 인간세계로 보낸 너도 잘못이지만, 삶을 두번이나 가진 인간이 더 큰 죄가되지." "하지만...!!" "최민호가 관여해 버렸다고? 그렇다면 그 둘을 같이 엮을 수 밖에." 온유님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그가 손을 들어올리더니, 별안간 거울을 향해 무언가를 집어던졌다. 난 본능적으로 그것을 막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거울쪽으로 가려고했다. 그런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막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쨍그랑- 둔탁한 무언가가 거울에 부딪혔고.. 거울이 깨짐과 동시에, 깨진 조각에 낭떠러지 끝에 위태롭게 걸려있던 그들의 차가 아래로 추락하는 것이 비추어 보였다. 그리고.. 파도가 그들이 타고 있던 차를 거칠게 집어삼키는 장면이 이어졌다. "안돼!!!!!!!" "이게 벌이라면 벌이겠지. 넌 이제 이 둘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저 지켜만 볼 수 있을 뿐이지." "대체 왜!!!! 왜!! 김종현이 행복하게 놔두질 않는 겁니까!!" 눈물이 터져서 내 얼굴을 젹시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너무 하다 싶었다. 이제 겨우 종현이 행복해지나 싶었더니, 다시 죽게되다니.. 난 결국 종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왜 김종현을 행복하게 놔두질 않냐고?" 온유님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곧 그 웃음이 사라지고 시린 목소리 만이 남았다. "그게 김종현의 운명이니깐." 하.. 운명..? 대체 운명이 뭐길래.. 한순간 내 눈빛이 공허해졌다. 입을 열어 그에게 물었다. "그럼.. 전.. 뭐가 되는 겁니까..?" 지금까지 김종현의 행복을 위해 모든 걸 다 바친 나는 대체 뭐가 되는 걸까..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려고한 용감한, 바보..?" 눈은 장난스레 웃고있었지만,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로 잔인한 말을 내밷는 그였다. 더이상 그를 마주할 수가 없었다. 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거울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커다란 조각엔 절벽에 파도가 부딪히는 장면만이 비추었고.. 그 다음으로 큰 조각엔..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있는 그들이 보였다. 서로 손을 꼭 맞잡은 채.. 그제서야 종현이 웃고있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래.. 이거면 된거다. 적어도 마지막은 웃게 되었으니깐.. 더이상 지켜보고 있을 용기가 나질 않아서 그대로 뒤돌아섰다. 다들 함부로 온유님 앞에선 돌아서질 않았지만 난 망설임 없이 뒤돌아섰다. 건방져 보여도 상관없고, 불쌍해 보여도 상관없었다. 이제 내 모든 목적을 잃었으며, 난 더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레이브젤에 들어가든, 사라지든.. 어떻게 해서든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문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뒤에서 온유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듣고싶지 않았다. 변명이든, 명령이든 뭐든간에.. 문을 열고 그의 공간에서 빠져나왔다. 점점 작아지는 그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바보를 사랑하는 멍청이가 되겠지.." . . . . . (Jong-hyun) 이제와서 후회가 들었다. 아까 민호한테 했던 말이 너무도 후회가 되었다. 벌을 받는 것일까..? 그보다도.. 기범이 원하는게 과연 이게 맞을지에 대한 의심이 그제서야 마구 들었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까 그 용기는 어디갔는지 지금은 두려움만이 남았다. 추락할 때 타고 있던 자동차에서 튕겨 나오는 바람에 민호와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민호가 곁에 없다는 사실이 날 이렇게 미치도록 두렵게 만든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버린 내가 너무도 한심했다. 그러나.. 후회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도달했다. 하지만 체념하기엔 민호에게 너무 미안했다. 난 살기 위해, 다시 민호를 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그런 날 비웃기라도 하는듯이 파도가 더 거세게 날 집어삼켰지만, 난 몸부림을 쳤다. 불행의 연속인 내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몸에 힘이 빠져왔다. 체념이 슬며시 고개를 들려고 했다. 바다 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와서 더이상 올라갈 수가 없었다. 대신 너무 깊어서 정신없던 소용돌이는 없었고, 잠잠했다. 그저 고요한 심해만이 눈앞에 가득 들어찼다. 두려움이 더욱 몰려왔다. 난 너무 바보같아서 내게 주어진 기회를 모두 놓쳐버렸고, 모두에게 상처만 남겨주었다. 한숨을 내쉬었다. 내 입에서 나온 기포가 위로 올라갔다. 반대로, 축 늘어진 내 몸은 아래로 가라앉기만 했다. 이젠 진짜 마지막이었다. 기범이가 실패하면 어떻게 된다고 했더라.. 영원히 사라진다고 했었나.. 차라리 속시원하게 사라져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았다. 난 끝까지 이기적이었다. 슬프게도 그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기적인 난,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몸부림이 미약해졌고, 따가운 눈도 이젠 감아버렸다. 이젠 모두 놓아버릴 때가 왔다. 김기범도.. 최민호도.. 나도.. 모두 다..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순간 누군가가 내 손을 꽉- 잡아왔다. 난 불안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찾아들며 눈을 떳다.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이렇게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도 손이 따뜻한 남자는.. 내가 사랑하는 최민호.. 단 한사람 뿐이니깐.. 이제야 알아차리다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기범이 아니라 민호라는 것을..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눈물들은 모조리 차가운 바다에 녹아 사라져 버렸다. 나는 민호의 눈을 마주보았다. 눈이 빨개져 있었다. 바닷물이 들어가서 그런걸까, 아님 나처럼 눈물을 흘려서 그런걸까.. 나는 숨을 참기 힘들어졌다. 꽤 오래전 부터 물속에 있었으니깐.. 나는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민호를 잡은 손에 힘이 풀리고 있었다. 이대로 온몸에 힘을 풀면 물이 입과 콧속으로 들어와 난 곧 죽게되겠지.. 괴로울 것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옆에 민호가 있으니깐.. 행복했다. 이것이 기범이 바라는 것일 거란 확신이 이제서야 들었다. 바닷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민호의 얼굴을 마주보며 힘없이 웃어보였다. 그리고 힘겹게 손을 올려서 민호의 볼에 손을 갖다 대었다. 뜨거웠다. 내 눈물처럼 민호의 눈물도 뜨거웠다. 이젠 이 감각을 느낄 수 없겠지.. 내 손이 민호의 볼에서 스륵 미끄러져 내려갔다. 동시에 눈꺼풀도 쉴새없이 눈물이 흘러나오는 내 눈을 천천히 덮었다. 하지만, 내 볼을 다급히 잡아오는 손에 난 무거워진 눈꺼풀을 다시 들어올렸다. 바닷속이지만, 날 태울듯이 뜨겁게 바라보던 민호가 내게로 다가와서 자신의 입술로 내 입술을 덮었다. 마주 닿은 입안으로 민호의 숨이 흘러들어왔다. 바보같이.. 자기도 숨을 못쉬어서 힘겨워 하고 있었으면서.. 민호의 혀가 내 입안으로 들어왔다. 더불어 짠 바닷물도 함께 흘러 들어왔지만, 민호의 혀가 너무도 달아서 느껴지지 않았다. 내 볼을 잡은 민호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민호의 볼을 잡은 내 손도 마찬가지였다. 민호가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점점 더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 맞잡은 손은 떼질 않았다. 따뜻한 민호의 손을 잡은 느낌이 좋았고, 이 느낌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믿었다. 민호가 먼저 눈을 살며시 감았다. 거의 동시에 나도 이젠 무거워진 눈꺼풀에서 드디어 힘을 풀었다. 거센 바닷물이 사정없이 힘빠진 우리의 몸을 덮었다. 전혀 괴롭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행복해서 미소가 지어졌다. 민호가 곁에 있으니깐.. 민호가 나와 함께하니깐.. 민호도 지금쯤..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 죽음이라는것이 이렇게 달콤해도 되는 걸까..? Sweet death fin.